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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Ping Pong Sweet Heart)>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하고 내 고민을 나누는 '교환(Swapping)'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접촉하고 주민들을 만날수록 고민 해결은 점점 미궁에 빠졌다.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일상 속의 나와 작가로서의 내가 하나로 섞이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진정한 고민 해결을 위해 새로운 사람을 초대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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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블루스(what happen in here), 2024, 합판 위에 연필, 사진, 비닐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Worry Sharing), 2024, 싱글채널비디오, 9분16초

내게 순종은 아직 좀 그래! (What Simone Weil says). 2024, 싱글채널비디오, 9분16초

마지막 전시일지도 모르겠어, 아니 아니야 (Riding a bike), 2024, 싱글채널비디오, 1분57초
탕탕(My Baby Shot Me Down) 2024, 싱글채널비디오, 2분11초

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 (Ping Pong Sweet Heart), 2024, 싱글채널비디오, 13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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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꿈을 꾸었구나 (Things You're Concerned About), 2024, 싱글채널비디오, 5분34초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 서혜림이라는 한 사람과 리얼리티-쇼의 진솔한 삶

 

글 : 콘노 유키(평론가)

 

 

필자가 서혜림의 다섯 편의 영상 작업을 전시장에서 처음 봤을 때, (한) 작가가 보내는 삶의 극복기로 이해했다. 작가는 처음에 전시장이 있는 배다리 동네에서 알게 된 두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Worry Sharing)>와 <내게 순종은 아직 좀 그래!(What Simone Weil says)>). 고민을 교환하기로 한 작가는 죽음의 두려움을 주민에게 고백한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 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두 영상에 담긴다. 그러다 이 인터뷰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본인의 쇼처럼 느껴지게 된 작가는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킨다. 어느 날, 서혜림은 이전 회사의 동료를 만나 배다리에서 자전거 여행을 같이 떠난다(<마지막 전시일지도 모르겠어, 아니 아니야(Riding a bike)>).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이번 전시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이어져, 상대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어서 <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Ping Pong Sweet Heart)>에서 두 사람은 드라이브하면서 예술이 무엇이냐는 대화를 나눈다. 정지된 풍경[1]에 둘이 서로 알아가면서 친목을 쌓는 모습이 대화를 통해 상상된다. 예술계 종사자가 아닌 상대방의 말은 가벼운 어조로 들리지만, 작가를—‘서혜림’이라는 한 사람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진지함이 느껴진다.

 

총 다섯 편[2]으로 구성된 작품을 보고, 감상자는 한 사람의 고독과 두려움이 둘의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한 내용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마지막에 소개된 <이상한 꿈을 꾸었구나(Things You're Concerned About)>는 침대 위에서 장면이 시작한다. 독백하듯이 말하는 작가 옆에서 교제하는 사람이 자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혜림은 카메라를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간다. 어두운 방으로 혼자 걸어가는 이 장면에 이르러, 이 영상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극복기로 그려지지 않음이 분명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둠이 암시하는 비극적 결말로도 보기 힘들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집에서 촬영된 이 장면은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있는 집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작가가 고민했던 것처럼 전시도 작품도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결말을 보고 혹자는 ‘방황’이라는 말로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과 나-상대가 주고받는 대화 형식은 닫힌, 즉 비공개적이고 내밀한 성격이 있다. 서혜림의 작품에서 방황이란 단순히 (작가가 보내는) 삶의 방황(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영상 형식을 통해서 쇼와 리얼리티(현실감)를 오갈 때 나타나는 것이다.

 

첫 번째 영상에서 그동안 종종 악몽을 꾸곤 했다는 작가의 말은 다섯 번째 영상에서 다시 상기된다. 여기서 작가는 “이상한 꿈을 꾸었어 … 꿈이 아니었어. 내 옛날 기억이 꿈에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배다리 주민과 나눈 대화와 달리, 침대 위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잠꼬대처럼 다소 모호한 독백과 위로로 반복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의 발걸음은 잠에서 깨어난 현실로 향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집에 머문다. 죽음을 고민하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쇼(show)와도 같은 가벼운 볼거리가 되었을까? 누워 있는 자리는 과거의 힘든 경험이 기억의 형태로 소환되는 임상시험의 장소가 되었을까? 옆에서 자는 상대가 그랬듯이, 술 먹고 주정 부리다가[3] 나온 헛소리에 가득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의 한 장면일까? 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닫힌 (곳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열린 결말 또는 행복한/불행한 결말로 향하는 선형성 대신 꿈과 현실이 거의 달라붙은 채로 돌아가는(순환하는/움직이는)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리얼리티 쇼(reality show)’라는 형식이 만연하는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작가에게 창작 행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진솔한 대화를 위한 인터뷰는 쇼일까, 일상은 예술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꿈이 아닌 이상한 꿈’처럼 서혜림의 삶에 따라왔을 것이다.

 

침대 위의 독백은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끝난다—꿈이 끝나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보여주고자 했던 현실이 꿈처럼 끝난 것일까. 궁극적으로 이 사람은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에서 차창 정면에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는 풍경에서 전시 또한 산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다 잠시,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죠”라는 말이 나온다. 전시에 안 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상대가 답해 준 한마디다. 이 말을 기억하는 우리가 어두운 방으로 걸어가던 작가를 만나게 된다. 방으로, 어둠으로 떠나는 작가를 우리는 당연히 붙잡을 수 없다. 영상의 시간을 멈출 수도 없고, 그다음 장면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발걸음은 꿈에서 깨어나기도, 깨어나지 않기도 하는 현실 속에 붙잡혀 있다. 일상 속의 나와 작가로서의 내가 하나로 섞이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4] 이 작업은 예술가와 한 개인 사이를 오가는 삶을 화해하지도, 와해시키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끌어낼 수 있는 메시지”를 추구하던 작가[5] 본인을 끌어내리는, 바꿔 말해 하차시키는 무대와 그가 내려온 현실이 있고, 이야기는 그 사이에서 펼쳐진다. 한 작가의 셀프-다큐멘터리(self-documentary)라는 작업 형식은 리얼리티 쇼와는 다른 현실감을 부여한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리얼리티와 쇼 사이에서 공명하면서, 쇼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거기에 있는 삶이라는 무대를 (그야말로) 암시(暗示)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소환되는 꿈처럼, 서혜림은 방황 대신 작가와 개인의 삶에 각각 발목 잡힌 채—그래도 살아가는 모습을 한 사람으로 보여준다. 

 

[1] 사실은 미세하게 클로즈-업 되고 있는 정지된 화면이다.

[2] 작품은 총 여섯 편이지만, 두 편이 하나로 합쳐져서 편집되어, 전시장에는 다섯 개 채널 및 스크린으로 각각 상영되었다.

[3] <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 대화 중에서.

[4] 서혜림의 설명 중에서.

[5] 4장 <어떤 전시가 될 지 모르겠어요> 대화 중에서.

© suh hyeri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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