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평행우주클럽> 다큐, 17분33초, 2022
새로 만난 2명(최민경, 최새미)과 전시를 하기로 한 혜림은 문득 작업으로 만난 사이가 어떤 관계가 될지 궁금해진다. 1년 전 각자에게 문자를 보내 1:1로 만나기로 한다. 1년 후 같은 장소에서 각각을 1:1로 또 만나면서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 달라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관찰한다.
출연 : 최민경, 최새미
촬영,연출,편집 : 서혜림
당신은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면(사후세계든, 영혼의 세계든, SF적 세계든, 제4세계든)
어떤 우정(혹은 사랑)을 나누고 싶나요?
2022. 8. 15. 혜림으로부터
***
《평행우주클럽: 가면을 쓰고 나를 소외시키던 공간을 침범하라》는 클럽 멤버 서혜림, 최민경, 최새미가 고안한 10개의 지시문(스코어)과 그것을 바탕으로 수행한 해프닝의 기록을 다룬다. 우리의 일상과 적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10개의 지시문은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작가들이 돌아가며 서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도출되었다. 일상의 곤궁함과 해방의 욕망을 나눈 어느 날 우리는 이 모임을 평행우주클럽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릴레이를 시작했다.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은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연결 짓고 변화를 상상해보기 위한 허구적 장치이자 놀이의 규칙이었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평행우주라는 관념을 통해 서로에게 주어진 현실이 나에게도 주어질 수 있던 것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각기 다른 조건에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모두에게 일상은 그에 내재한 불안, 괴리, 폭력과 마주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동일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은 SF적 상상력을 빌려 눈앞의 현실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갈 동력을 제공하는 발판이기도 했다. 냉소 또는 회의를 넘어 현실적으로라면 이미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소망을 다시 품어보기 위해서는 이런 우회장치가 필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행우주는 우리가 소외된 일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가면이었다.
무엇보다도 평행우주는 서로의 삶에, 그리고 작업에 침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우주를 넘나들며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SF 속 주인공들처럼 클럽 멤버들은 서로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고, 때로는 상대를 대리한 무언가를 수행했으며, 상대방이 만든 것을 마음대로 가져와 바꾸어 쓰기도 했다. 무례하다면 무례할 법한 ‘선 넘기’조차 평행우주라는 미명 아래 선선히 용납되어 서로의 변화를 지지하는 연대의 목소리로서, 누군가의 간섭을 동력 삼아 스스로의 삶을 이전과는 다르게 다루어보겠다는 욕망을 부추겼다. 이런 침범은 엄격한 저자성을 해체하는 것으로서 서로 다른 세 사람의 모습, 목소리, 시선을 곳곳에 담은 작품으로 제시되며, 침범을 허락함으로써 변화하려 했던 지난 시간이 가진 공동성을 부각한다. 혜림을 위해 새미가 작성한 무보를 민경이 수행하고 그에 대한 답신으로서 혜림이 고안한 춤이 다른 장소에서 반복되듯, 평행우주클럽의 실험적 예제와 함께 10개의 지시문은 어딘가의 평행우주에 존재할 누군가에게 동참을 제안한다.
*
그럼에도 여전히 질문은 남아 있다. 우리가 정말로 서로의 삶을 침범했을까? 이 임시적인 모임이 조금이라도 삶을 변화시켰을까? 아무튼지 우리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 만남의 중개인이자 가까운 목격자로서 전시의 배경과 목적을 서술했다면, 이후로는 여하간 이 프로젝트에 가담하면서도 작가들이 끝까지 멈추지 않았던 위의 질문에 대한 본인의 사적인 소회를 공(공)연히 밝히며 글을 마치려 한다.
‘전시(배우고 이해하기로는 미술을 매개로 한 공적인 대화의 장)’로서 작동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여왔지만, 본인은 이 전시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과 관계(그리고 어쩌면 존재할지 모를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왔다. 사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시를 시작하며 세운 순진하고 가당찮은 목표가 “사람들 사이를 잇고 삶을 변화시키는 미술의 가능성을 (재)확인”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본인은 몇가지 섣부른(무례한) 가정과 사적인 선택을 섞어 여러분을 모이게 했다. 친한 사람,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 누군가 필요해 보였던 사람, 어떤 필요를 채워줄 것 같은 사람. 우리가 미술을 통해 모이고 대화할 수 있으니, 전시를 하자고 하는 것도 여지없이 자연스러웠다.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전시를 빌미로 모여, 해를 넘는 시간 동안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서로의 삶이 흘러가는 과정을 목격해왔다.
여기에서 미술은 관계에 앞선 목적이 아니라 관계가 생성되는 근거로 자리한다. 전시를 앞둔 지금, 이상하지만 처음으로 나를 위해 미술을 사용해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들여 세공한 언어의 전문적 형식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접근하는(접근하려 시도하는 혹은 접근이 제한된 지점을 확인하는) 일을 해볼 수 있다는 대답을 얻은 것 같다. 누군가 그것이 사사롭고 의미가 결여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술의 가능성”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이렇듯 헛되고 끈덕진 시도를 다시 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미술이라면 새롭게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허송세월, 가차 없는 제언으로 함께해준 평행우주클럽 여러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글 이주연
.jpg)
.jpg)
.jpg)

.jpg)
.jpg)
.jpg)
.jpg)
.jpg)
.jpg)
.jpg)
.jpg)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