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관이라 들었소 (2015)
전시는 한 일간지의 ‘달관세대’라는 정의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2015년 2월 한 일간지에서 다룬 ‘달관세대’또한 흔히 볼 수 있는 세대론 중 하나였다. 기사에서 일컫는 ‘달관세대’란 작은 소비, 작은 월급, 작은 꿈으로 안분지족하는 세대를 의미한다. 문제는 타언론사에서도 밝혔듯,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는 점이다. 달관하기 때문에 달관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달관하고 싶지 않은데 달관처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막강한 매스컴이 만든 프레임은 견고하다. 달관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청년이라는 이유에서 ‘달관세대’로 규정됐다. 그 용어는 청년층을 꿰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규정된 청년들에게 주어진 반박, 해명 기회는 많지 않다. 이는 비단 ‘달관세대’라는 용어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매스컴이나 큰 제도 앞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찾는 일은 더욱 요원해보인다.
이에, 한 인터뷰이의 의견을 참조해 달관세대를 재정의한다. ‘청년층은 두 부류로 구성돼있다. 기존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기업위주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 새로운 프레임을 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류, 그리고 기존의 방식을 어느정도 수용하며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류다. 두 부류 중 어느 한 쪽도 달관하지 않았다. 진취세대와 절망세대다.’
자신이 ‘달관세대’라 정의돼버렸다고 생각하는 서울거주 20~30대, 무소득부터 월 250이하의 수입인 인터뷰이를 모집했다. 신림, 노량진, 테헤란로, 대학로, 신촌에 공고문을 붙였고 인터넷 사이트에 공고문을 올렸다. 총 10명에게 연락이 왔으며, 이 중 7명을 심층인터뷰했고, 6명의 생각 및 경험을 작업으로 만들었다. 추가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작업으로 만들었다.
서혜림
절망의 나라의 청년들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전시 {달관이라 들었소}에 부쳐
먼저 세대론의 정의부터 살펴 보자. 세대론이란,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어긋남을 강조하여 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모색하는 이론이다. 즉, 세대론은 특정 세대에 주목하여,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인식하고, 내일로 향하는 힘을 모색한다.
근래의 한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된 세대론은 88만원세대론이다. 두 좌파 논객 우석훈과 박권일은 2007년 여름,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세대 간 (소득) 불균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세대론을 근거 삼아, 청년들이 장노년 기성 권력을 향해 짱돌을 던지는 투쟁의 서사를 펼쳤지만, 이는 실증적으로 기각되었다. 통계적으로 세대 간 격차보다 계급 간 격차가 훨씬 크게 나타났기에, 가난을 청년의 전유물로 주장할 수 없게 된 것.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장노년의 착취로써 청년의 가난을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세대론은 그 유효성을 상실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사토리세대, 니트(NEET)족, 이케아세대, 삼포세대, 달관세대 등의 용어가 계속해서 오르내린다. 2010년대의 청년인 우리를 지속적으로 호명하는 세대론이, 우리의 가난을 설명해 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 있을까? 그것이 이상적인 내일을 꿈꾸는 데 있어 여전히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오늘의 상황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바람직한 내일의 모습만이라도 합의할 수 있다면, 구질구질한 오늘을 바꿀 수 있다. 세대론은 일종의 우회 전략이 된 셈이다. 이케아, 유니클로, 비좁은 원룸, 비정규직 등 청년들을 둘러싼 것들을,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 대상으로 선별함으로써. 그래서 세대론은 어떤 내일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서사들이 경쟁하는,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된다.
여기서 누가 세대론을 말하는지가 중요해진다. 2010년대 한국 사회에 등장한 세대론을 곰곰이 뜯어 보자. 삼포세대론과 달관세대론은 청년을 특정 서사의 주인공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아닌가? 삼포세대라는 용어는 2011년 경향신문의 기획 {복지국가를 말한다}에서 등장했고, 달관세대라는 용어는 2015년 조선일보의 기획 {달관 세대가 사는 법}에서 등장했다. 두 세대론은 오늘의 청년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나름의 서사를 쓰고 있다. 이는 소위 보수와 진보 진영이, 청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전자는 청년들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으로서 활동하여 포기했던 것을 되찾으라 권하며, 후자는 일본의 사토리세대론을 거칠게 빌려옴으로써, 청년들이 현실의 무게에 절망하지 말고 (기대를 줄임으로써)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 남을 것을 권하고 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개척하려는 청년이라면 단순히 서사의 주인공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성 세대가 우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 서사에 스스로를 무비판적으로 이입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책무는, 우리 세대의 서사를 직접 쓰는 것이다. 경제가 쇠퇴하고 노년층 유권자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청년을 위한 자리가 거저 생길 리 없다. 우리의 서사가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써 내일을 추동하는 정치적 힘을 획득할 때, 우리의 세대론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새로운 세대론은 우리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시민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 스스로가 처한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적 맥락을 깊이 응시해 보자. 당신은 매월 얼마나 버는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입으면서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는가? 그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변화를 위해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린 엔터테인먼트(임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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